방송기술

라디오에서 텔레비전으로 전환

브로드캐스트민 2023. 3. 8. 19:35

1.  TV 등장 배경

1839년 은판사진술 발명( 그 뒤 청사진을 환등기에 비쳐 보임으로 그림의 연속적 환영이 나타나는 것 알게 됨).

1894년 니코브 (Nipkow) 주사 디스크 (Scanning Disk) 발견(어떤 대상이 비쳐져서 그 물체의 내용과 이미지를 셀레늄 광전지에 의해 전기신호로 바꾸는 장치)

1930년대 여러 나라에서 텔레비전 정규방송이 시작되었는데, 1936년 11월 2일 영국에서 세계 최초의 텔레비젼 방송이 실현되었다.

1954년 미국에서 NTSC 방식으로 컬러 방송을 시작하였고,
1967년 영국과 독일 PAL 방식,
1967년 프랑스에서 개발한 SECAM 방식의 컬러방송이 공산권과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다.

 

2.  초기 흑백TV

  자신의 집에서 원하는 것을 볼 수 있게 된 계기는 사람들의 자연적인 호기심이었다. 전자파(무선 방송)를 이용하여 소리를 전송할 수 있는 능력을 과학이 우리에게 주었을 때, 다음 단계는 소리와 함께 이미지를 전송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자연적으로 연구하게 되었으며 그 연구는 많은 나라의 과학자들이 수행하게 되었다.

 텔레비전은 1920년대 후반부터 각 나라가 실험방송을 착수하여 1935년 독일, 1936년 영국에서 본방송이 개시되었고, 우리나라는 1956년 5월 12일에 한국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인 HLKZ TV가 개국되어 첫 텔레비전 전파를 발사했다.

 처음에는 미국의 전자제품회사인 RCA에 의해 운영되어 KORCAD라는 출력 0.1㎾, 채널 9, 영상주파수 186∼192㎒의 소규모 방송국이 설립되었으나 적자운영으로 인해 1957년 5월에 한국일보 사주에게 운영권이 넘어가고 방송국 명칭도 대한방송주식회사(DBC)로 개편되었다. 미국 상업 텔레비전 패턴을 따른 편성방침으로 운영되던 DBC TV는 1959년 2월 화재로 인해 대부분이 소실되어 방송이 중단되었다. HLKZ TV의 화재로 한국어 TV방송이 중단되다가 1961년 12월 31일 KBS TV가 HLGK, 채널 9로 남산송신소에서 영상출력 2㎾, 음성출력 1㎾로 출범함으로써 한국 TV방송망 확장의 기초가 되었다. 그리고 1957년에는 전쟁 중에 있었던 미국방송을 전신으로 하여 AFKN TV가 방송을 실시했으며, 1959년 4월 15일 부산에서 한국 최초의 상업방송인 부산문화방송이 탄생하여 이후 1961년 12월 2일 수도 서울에서 한국문화방송이 생기는데 기틀을 잡아놓았다.

 

[ 아날로그 TV ]

3. 컬러TV

 컬러TV 방송 연구는 정상적인 흑백방송 서비스가 시작하기 전에 많은 나라에서 수행하게 되었으나, 흑백방송 초기 서비스 이후로 칼러 수신시스템 흑백수상기와 방송사이의 호환성에 대해 디자인되었다. 다양한 표준위원회에 의해 적용된 3가지 컬러 시스템은 미국의 NTSC, 유럽의 PAL, 프랑스의 SECAM 방식이다. 우리나라는 흑백 전송(525라인, 30fps)인 미국과 동일한 시스템인 NTSC 방식을 선택하였다. 1980년 12월 KBS 제1TV를 기점으로 개시하면서 전 TV가 컬러화 되었다. 컬러TV는 30여년간 방송되어오다가 2012년 12월 31일 아날로그 TV방송이 종료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 아날로그 TV방송 종료 안내 ]

 

4.  케이블TV

  케이블 TV는 1940년대 말 미국의 산악지역에서 산발적으로 처음 시작되었다. 산에 둘러싸여 TV전파를 수신할 수 없는 지역에 공동 수신안테나를 높은 지역에 설치하고 이를 유선을 통해 직접 가입자들에게 전달한 것이 케이블 TV의 시초이다.  많은 지역에서 지상파 방송을 수신하는 신호가 약하면 주안테나를 설치하여 많은 집으로 보낼 수 있게 한 것이 CATV이다. CATV는 지금 언급된 것으로 서서히 발전해 왔으나, 그 원래 의도는 TV를 이용할 수 없는 다른 지역의 시청자에 대한 수신 신호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1960년대의 고화질 동축케이블과 TR증폭기들은 CATV에 대한 인기를 증가시켰다.

 

  우리나라는 1986년 말 정기국회에서 케이블 텔레비전 법안이 통과되어 일단은 재송신 시스템으로 출발했다. 1991년 12월에 종합유선방송법이 제정되었으며, 그 이후 공보처는 방송구역을 확정하고 사업자를 선정하여 1995년 1월 시험방송을 거쳐 같은 해 3월부터 아날로그 케이블TV 방송을 개시하였다. 케이블TV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Program Provider), 종합유선방송국(SO, System Operator), 전송망사업자(NO, Network Operator)의 3분할 체제로 운영된다.

 

  1995년 3월 국내 첫 개국 당시 48개 케이블TV방송국(SO), 24개 프로그램공급자(PP), 지상파TV 채널의 송출로 출발하였다. 적은 가입자 확보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케이블TV 업계는 1997년 말에 외환위기로 촉발된 경기후퇴로 인해서 큰 변화를 겪게 된다. PP업계에 진출하였던 삼성, 대우, 현대, 진로 등 대기업이 1998년에서 1999년에 걸쳐 퇴출하게 되었고, 정부차원에서 케이블TV의 활성화를 위한 방안이 모색되었다. 1998년 8월에는 전 채널 의무 전송제가 폐지되어 티어링이 가능해졌다. 1999년 1월에는 종합유선방송법을 개정하여 SO, PP, NO간의 상호 겸용을 허용하였고, 복수 SO 및 PP를 허용하였으며, 대기업과 외국인이 SO 및 PP(보도채널 제외)의 지분을 33%까지 소유할 수 있게 하였으며, PP의 10% 자체제작 비율을 폐지하였다. 이러한 제도로 인하여 대호, 조선무역 등이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 Multiple System Operator)'로 온미디어 등이 '복수방송채널사용사업자(MPP, Multiple Program Provider)'로 등장할 수 있게 되었다.

 

  초기에 케이블TV 업계는 가입자의 수신료를 3자 분할하는 수익배분 형태로 유지되었다. PP에 32.5%를 배분하고 SO가 52.5%를 가져갔으며, NO는 15%를 받는 구조였다. 그러나 2001년 방송법에 따라 PP가 기존의 허가ㆍ승인제에서 등록제로 전환되면서 사업자 수가 증가했고 MPP가 허용되었다. 또한 2개 이상의 SO를 동시 운영하는 MSO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로써 기존의 수익배분 구조가 깨졌고, 2005년 PP의 수신료 배분율은 13%로 감소했다. 2007년말 국내 케이블TV는 103개의 MSO(Multiple System Operator)사업자와 115개의 중계유선사업자, 188개의 PP(Program Provider)가 사업을 운영 중이었으며, 상위 8개의 MSO들의 매출액이 시장점유율 81% 이상을 차지하였다. 이에 2008년 방송통신위원회에서 SO가 PP에 지급해야 할 수신료를 25%로 규정함에 따라, 2009년 SO-PP 간 '수신료 배분 합의서'가 체결되었다. 한편 2011년 12월 방송통신위원회는 수신료 지급기준을 디지털 전환율에 따라 최대 28%로 확대하였다. 2012년 케이블TV 업계는 종합유선방송국(SO)과 방송채널사용사업(PP)을 통합한 MSP(MSO+MPP) 형태로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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